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후쿠모토 노부유키 (문단 편집) == 약력 == 원래 건설회사 현장감독 출신으로, 처음부터 그림으로 먹고 사는 사람은 아니었다. 이때 만화 투고를 했다가 '그림을 못 그리니 만화가 [[어시스턴트]]로 실력을 닦아라'는 조언을 받는다. 이후 회사를 그만두고 어시스턴트 생활을 했다. 그런데 그림을 너무 못 그린다는 이유로 이 어시 생활에서도 나중에 해고당하게 되는데[* 그를 어시로 고용했던 만화가 "카자마 에이지(かざま鋭二)"가 그를 해고하면서 해준 말은 "후쿠모토 군은 트럭운전 같은 게 적성에 더 맞는 것 아닐까"였다고 한다. ~~이거 왠지 [[엘비스 프레슬리]]랑 비슷한데~~ 그러나 후에 카이지 500회를 기념하여 축전을 보내주기도 했던 것을 보면 서로 인간적으로 싫어했던 것은 아닌듯 싶다.] "내 그림은 형편없지만 스토리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아"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자신의 실력을 닦아 왔다고. 1980년, 월간 [[소년 챔피언]]에 <잘 부탁해, 순정대장>을 게재하며 데뷔하지만 이렇다 할 인기작을 내지 못하고, [[짬뽕]] 배달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려가면서 각종 만화전에 응모하며 긴 밑바닥 생활을 겪었다.[* 이 시절, 불확실한 미래에 방황하며 친구들과 즐기는 마작에서만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던 경험이 훗날의 작품에 영향을 끼쳤다.] 1987년, <악어의 첫사랑>으로 제4회 치바 테츠야 상을 수상. [[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|아르바이트만으로도 어찌어찌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으나]][* 1980년대 일본에서는 알바로만 사는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.] 오로지 만화 한 길만을 걷기 위해 그만 두었다고 한다. 1980년대엔 [[버블경제]]의 영향으로 도박 만화가 융성하고 있었기 때문에, 일감이 많이 들어온다는 이유로 도박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다. 1980년대 말부터 근대 마작 골드에 [[텐 - 텐호의 길을 걷는 쾌남아]]를 연재. 이 작품은 증간되어 후쿠모토로서는 최초의 인기작이 되었고 만화가로서의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. 이후 [[아카기 ~어둠에서 춤추듯 내려온 천재~]]와 [[은과 금]], [[도박묵시록 카이지]] 등으로 단숨에 인기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. 2005년에 작품 중에 처음으로 [[아카기]]가 애니화 되면서 인지도가 급상승, 평소 그리 대중적으로는 읽혀지지 않았던 후쿠모토의 다른 작품들이 수면위로 떠오르면서 아카기에 이어 2007년 [[도박묵시록 카이지|카이지]]도 애니화, 후쿠모토 붐이 일었다. 이후 작품 중에 절판된 것도 재발매 하는등 일본 서점에서 후쿠모토 작품이 쭉 진열돼있는 모습이 자주 발견 된다.[* 뱀발로 이때 이후로 [[코믹마켓]] FC청년부문에 아예 후쿠모토 노부유키가 장르화 됐다. 서클들은 거의 [[여성향]][[보이즈 러브|BL]]이 주류다. ~~작품에 남정네들만 나오다 보니~~] 자신의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[[카이지(영화)]]에 조연으로 특별출연하기도 했다. [[도박패왕전 제로]]를 원작으로 하는 [[제로 일확천금 게임]]에 특별출연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